줄이고 줄여도 줄일 수 없는 즐거운 출산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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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글이 좀 깁니다^^
"라온"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즐거운" 출산 후기,
마음의 준비 하시고 즐겁게 읽어주시길~!
내 인생 가장 귀한 보물인 내 아기,
그런 내 보물을 돌보느라 오늘도 수고한 나의 엄마,
내 보물의 아비이자 내 평생의 짝꿍인 내 남편,
그리고 내 보물의 보모 역할을 톡톡히 해주는 다섯 마리의 반려견까지 모두 잠든 깊은 새벽.
짧지 않은 기다림과 적지 않은 진통의 아픔 마저 "즐거울" 수 있었던 "라온"에서의 출산 후기를 써 내려 갑니다.
라온산부인과와의 첫 만남은 조금은 갑작스러운 것이었고, 두 번째 만남은 절벽 아래가 훤히 보이는 위험하고 두려운 때에 만난 피난처이자 안식처 같은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꽤나 과장되게 느껴질 수 있는 이런 표현을 쓰게 된 것.
어느 해 여름, 생리를 할 때면 비정상적인 출혈과 극심한 생리통이 한동안 계속되어 찾았던 모처의 대학 병원에서, 차디찬 분위기와 무언가 내 속에 들어오지 말아야 할 것 같은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산부인과에서의 첫 경험. 그 때 진료를 받던 중 벌떡 일어나 나왔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고는 흐르고 흐르는 피의 양이 도저히 감당되지 않기에 찾았던 곳이, 장보러 나왔다 문득 들른 라온이었죠. 그게 첫 번 째 만남.
그 때 만난 3과 조용훈 원장님께서 제 속의 커다란 자궁근종을 발견해 주셨고, 더 나은 치료 방법의 선택을 위해 아이가 없던 저희 부부에게 임신과 출산을 먼저 권하셔서 진행하게 된 인공수정과 몇 번의 시험관 시술. 감사하게도 시험관 시술을 통해 임신을 성공하게 되었지만, 시험관을 진행한 난임 전문 병원에서는 임신과 동시에 조산을 거의 확언했고, 근종으로 인해 제왕절개의 높은 가능성(거의 100%로라고 하셨었습니다.) 그리고 대학병원으로 출산 병원을 정하라는 조언을 해 주셨었던 때.
혼인한 후 이 지역으로 내려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터라 아무런 정보가 없어 그저 찾았던 대형 병원에서는 하나같이 출산은 제왕절개만이 답인 듯 이야기했고, 내심 자연분만의 욕심과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출산하고 싶었던 마음, 거기에 부끄럽고 무지한 고백이지만 혼인 후 몇 해나 지난 꽤 먹은 나이에 제 속을 처음 보였던, 그러나 어느 해 여름의 하다 만 첫 경험 때보다 훨씬 편안했고 따뜻했던 라온과 조원장님이 떠올라 임신 후 찾았던 라온과의 만남이 바로 그 두 번째 만남이었기에 위와 같이 과정되어 보이는 표현을 저는 당연스레 쓰게 됩니다.
임신의 기쁨보다는 그저 큰 탈 없이 저도 아이도 열 달을 잘 보낼 수 있기만을 기도하며, 주변에 임신 사실도 알리기를 조심해야 했던 우리 부부에게 늘 편안하고 따뜻하면서도 가장 현실적인 조언으로 힘이 되어 주셨던 조용훈 원장님. 기쁨과 행복, 감사여야 할 아이가 사실 저희 부부에게는 또 하나의 큰 걱정이자 근심, 그리고 큰 무게였던 때에 매달 또 때로는 좀 더 자주 조원장님을 봬면서 안도하게 되고, 숨을 고르게 되고, 웃게 되고, 그러면서 "라온"이라는 말처럼 "즐거움"이 될 수 있었습니다.
질병을 가진 환자들에게 의사선생님들의 말씀, 그뿐만 아니라 표정, 모습 등등 그 분들의 여러가지가 때로는 힘이 되고 또 좌절이 되기도 하는데, 그런 면에서 조원장님은 제가 만난 많은 분들 중에 단연 최고의 의사선생님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랬기에 산부인과라면 기절하게 싫어하시는 엄마도 직접 모시고 갔고, 임신과 출산을 앞둔 지인들에게 라온을 적극적으로 추천하면서 거기에 보태어 "나 조원장님 사랑해^^"라고 농담 반 진담 반 제가 가진 감사의 마음을 엉뚱하게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제 출산 이야기를 좀 더 가까이 해 볼까요?
저에게 만큼은 유난스러운 남편 때문에, 대여섯 군데의 병원을 순회하며 지겹도록 조산과 제왕절개를 반복적으로 듣던 임신 초기에,
"열 달을 함께 해야하는데, 받아만 주신다면 나 라온 갈래. 내 맘이 편해야 진료도 가고 싶을 거잖아."라며 남편과 엄마에게 선언한 후 찾았던 라온산부인과 그리고 조원장님.
무거운 마음으로,
"원장님, 저는 자궁근종 때문에 자연분만 확률 0%인가요?"
라고 여쭈었더니 미소를 지으며,
"아니야, 건강한 사람도 갑자기 제왕절개를 해야 할 수 있고, 근종이 있어도 자연분만 할 수도 있지."
한 줄기 빛과 같았던 말씀.
그렇죠. 사람의 몸 그리고 인생. 아무것도 정해진 것은 없는데, 그 조그만 확률도 어떻게 말해주느냐에 따라 희바가 달라질 수 있는 것.
"그럼 저는 어떻게 하는 편이 좋을까요?"
"엄마 마음이 편한 데로 하는게 좋은데..."
"그럼 일단 선생님께서 봐주실 수 있나요?"
"그럼. 출산은 내가 전문이야 (웃음)."
'아싸! (속으로 생각)'
"혹시라도 위급한 상황이 생겨 그래야 하는 때가 오면, 때맞춰 잘 보내줄테니 염려 말고.
혹시 큰 병원으로 가고 싶어지면 말하고. 정보 잘 담아서 보내줄게"
'오 주여! 이곳입니다. 가긴 어딜 가나요!!! (역시나 속으로 생각)'
그렇게 원장님을 믿고, 또 제 손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게 된 산모 수첩을 들고, 아픔과, 치욕과, 서글픔과, 걱정... 등등이 가득했던 제 마음은 어느새 제 속에 있는 아기와의 즐거운 만남을 처음으로 기대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엘레베이터 안에서 몇 번 면 번이나 초음파 영상을 웃고 또 웃으며 확인할 수 있게 되었드랬습니다.
이제 와 드리는 말씀이지만, 초기에 유산기 때문에 "매일", "같은 시간"에 주사를 맞아야 했는데 제 이름, 맞아야 할 시간까지도 기억해 두셨다가 일요일에도 주사를 맞을 수 있게 도와주셨던 라온의 9층, 10층 간호사 선생님들. 정말 고맙습니다.
매달 정기검진을 받으러 가는 길은 진심으로, 친절한 데스크 선생님들로 시작해 평온함과 전문성을 온전히 가득 채운 조원장님으로 인해 행복한 설렘이 될 수 있었고, 한 번도 얼굴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 제 아기 모습을 어떻게든 잘 보이게 해주시려고 요리조리 살피시는 원장님을 오히려 저희 부부가 웃으며 "괜찮아요 선생님, 걔 안보여주고 싶은가봐요."하며 말리기도(?) 했던, 지금도 저를 웃게 하는 추억.
사실 시험관 시술을 하던 중에 일을 쉬는 편이 좋으리란 조언을 수없이 들었음에도 계속해서 일을 했었고, 아이를 갖고도 일을 계속 하던 제 성격, 태도, 스타일... 뭐 그런 것과 조원장님이 아주 잘 맞았던 것도 같습니다. 평소 '유난스럽지는 않게 하지만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이 정도가 제 삶의 모토인데, 자칫 처음이라 잘 몰라서, 유난스러울 수도 있었던 제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임신과 출산의 과정이, 저의 엄마마저 놀랄만큼 제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 지낼 수 있었던 것. 같은 말씀이어도 언제나 불안과 우려가 아니라 편안함과 담담함으로 이겨낼 수 있도록 조언해주신 조원장님 덕분이었습니다.
"조산. 할 수도 있어. 그런데 너무 걱정하지 말고 마음 편하게. 엄마 마음 편한 게 제일이니까."
'암요. 걱정 안합니다. 원장님 계신데요 뭘^^'
'아이 생각하면... 기본적으로 누가 봐도 무리가 되는 일은 안 할 거잖아. 막 무거운걸 든다거나 그런... 하던 일 엄마 마음 즐겁게 하는 건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저 정말 일 계속 하고 싶거든요.'
늘 가장 현실적인 말씀.
그리고 기형아 검사 후, 꽤나 높은 수치의 다운증후군 가능성이 담긴 결과지를 보고 회색빛이 된 저희 부부에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괜찮을거야. 그런데 아예 안하는 것보다는 라이트한 검사라도 하고, 마음 편안해지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옳거니! 그것입니다! (역시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시는 원장님의 현실적인 조언.)'
임신성 당뇨 판정을 받았을 때도
"너무 스트레스 받지마. 그리고 이 참에 아기도 나도 건강관리 더 잘 하는 거지. 평소에 당뇨 없었으니까 조금만 신경 쓰면 괜찮을 거예요."
'네네, 저도 그러리라 믿어요.'
이처럼 이것저것 걸릴 것 다 걸려들었던(?) 제 임신 과정에서 조원장님과 라온은 제 평온함과 즐거움의 숨은 이유였습니다.
어느덧, 이제 곧 아기를 만나도 괜찮겠다는 막달에 이르고, 아기를 품은 내내 너무 늦지도, 너무 이르지도 않은 때에, 하지만 조금은 일찍 나와주면 좋겠다고 매일 기도하며 속삭였었는데, 아무런 증상 없이 지나던 36주. 그리고 그 마지막 날 저녁 7시. 드디어... 쪼르르~~~~
처음이었지만 양수가 새는 것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몇 달을 조원장님께 훈련(?) 받은 덕인지 놀람 제로, 난리 법석 제로.
나란히 누워 찬양을 부르던 엄마에게,
"나 양수 새는 거 같어. 이오공(태명)씨 곧 만나겠어."
(엄마, 벌떡 일어나며) "뭐? 근데 얜 워째 이렇게 평안하댜!"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여보씨! 이오공씨를 머지 않아 만날 듯 싶어. 양수 새는 거 같그등. 근데 지금 말고 일 다 보고 천천히 오셔. 지금 가봐야 조원장님 안계셔. 나 내일 오전에 원장님 계실 때 갈겨."
"아니, 양수가 새는 거면 지금 빨리...."
(전화기 너머로 남편의 놀람 섞인 발언을 무시하고 뚝 끊어 버림. 후훗)
저녁 7시부터 주르륵 새어 나오기 시작하는 양수의 양을 확인하면서 대충 출산가방이라는 것도 싸고, 미처 정리하지 못한 집안 구석구석 먼지도 좀 훔쳐 내고, 최소 며칠은 만나지 못할 다섯 마리의 반려견을 하나씩 꼬옥 안아주며 8시, 주르륵. 9시, 주르르륵. 10시, 주르르르륵. 11시, 주르르르~~~~~~~~륵. 일 다 보고 천천히 오란 말에 충실히 임무를 다하는 남편.
"뭣이 중헌디!"라고 문자를 보내니 10분 만에 달려와 온갖 세상 미안한 표정 다 담아 안절부절 못하는 남편에게,
"복터로 갑시다."
(평소 대전 복합터미널을 "복터"로 표현해 왔던 본인.)
양수가 새기 시작한 7시를 기준, 아직은 조금 여유가 있으리란 생각으로 병원에 가기 전, 먼저 M사에 들러 시그니처 버거를 세트 메뉴로 어제와 같이 그리고 그제와 같이 그날도 즐기고,
"이제 병원 가는 거지?"
하는 남편에게,
"아이스 배닐라 라레를 한 잔 즐겨 주실 거야."라고 선언.
그리고는 병원 코 앞, 늦은 시각까지 감사하게도 문이 열린 까페에서 아이스 바닐라 라떼를 쪽쪽 땡기며 분만실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양수가 조르륵 조르륵 합니다. 곧 도착할 수 있을 거예요."
37주 1일 새벽 1시, 드디어 병원에 입성.
남편과 영화 찍 듯 "잘 하고 올게" 뭐 그런 거 하며 헤어지려고 엘레베이터에서 계획 하였으나!
전화를 미리 드린 탓인지, 도착하자마자 저는 분만실로 남편은 서류 작성을 위해 각기 다른 간호사 선생님들을 따라 미처 인사를 나눌 겨를도 없이 갈라져야 했고.....
굴욕은 무슨 ^^
언제부터 양수가 새기 시작했는지, 마지막으로 먹은 건 몇 시에 무엇이었는지 등등의 필요한 질문으로부터 첫 아이인지, 결혼은 언제 했는지와 같은 개인적이고도 편안한 질문 세례를 퍼부으시며 번개 같이 재빠른 손놀림, 그러면서도 부드럽게 샤샤샥 첫 내진과 제모까지 끝 그리고 입원실로 이동.
초산이라 시간이 걸릴 거라며 잠을 좀 청하라는 간호사 선생님. (남편에게는 그 날 오후나 저녁 즈음 아기를 만나게 될 거라고 하셨다더군요.) 하지만 1시에 입원하고 새벽 3시 즈음, 제게 진통이 몰려 오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시작이구나.'라고 생각한 저는 진통을 제대로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제가 준비한 '진통 제대로 받아들이기'의 과정은 아래와 같습니다.
1. 남편에게 졸지 말고 제대로 자라고 명한다.
--> 하루 종일 일하고 온 남편. 아기가 태어나면 뒤치다꺼리 하느라 더 피곤해질텐데 미리 같이 날 밤 새울 필요는 없다고 판단. 소파에서 눈을 감았다 떴다 앉지도 눕지도 서지도 못하는 남편에게 제대로 누워 편히 자도록 허해 줍니다.
"당신 그렇게 떠받치고 있는 거 내 진통에 그닥 도움이 되지 않아. 그냥 주무셔."
(그래도 누워서 자지 않습디다. 에유~ 양심 있는 냥반! 후훗)
2. 평소 즐겨 듣던, 아기에게도 익숙하고 내 마음에도 평화를 주는 음악을 튼다.
--> 개인적으로, '태교'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지 않더라도 제가 좋아하고, 이 다음에 아이과 함께 부르고 싶던 노래가 있어 자주 듣던 곡들이 있었는데, 어서 엄마 만나 같이 부르자~ 뭐 그런 마음으로, 즉 녀석에게 빨리 나올 것을 부드럽게 재촉하는 의미의 하나로 음악을 잔잔히 틀었습니다.
(이 곡들은 녀석이 태어나 때때로 폭발 짜증을 부릴 때 틀고 제가 조용히 불러주면 녀석이 잠잠해 지는 것에 큰 도움이 되곤 합니다.)
3. 링거를 걸이에 걸고, 최대한 남편이 보이지 않는 구석으로 가서 쪼그려 앉는다.
--> 이미 가만히 누워 있기에는 너무나 괴로운 고통의 시작. 돌아 눕기도, 앉기도, 서기도 힘든 현실. '끝나야 끝나는 것'이라는 생각. 차라리 빠른 진행을 위해 노력하기로 합니다. 용쓰는 얼굴은 아름답지 않을 테니 링거를 털털털 끌고 창가 쪽 구석으로 간 후, 음악을 들으며 쪼그려 앉아 요가 시간에 배운 호흡으로 아기가 좀 더 잘 내려올 수 있도록 나름대로 노력했습니다.
(14주 이후부터 참여 가능한 라온의 산모 요가 교실. 16주부터 참여했습니다. 좋아요!)
노래를 틀어 놓고 조곤조곤 따라 부르며 (물론 제대로 된 따라 부르기는 전혀 되지 않습니다만!), '아가야, 엄마랑 얼른 만나자...'라며 배가 뒤틀리게 아픈 그 지경마다 힘을 주어 보았습니다. 혹시나~ 하고 살펴 보러 오셨던 간호사 선생님께서 "왜 생각보다 빨리 진통을 느끼시는 것 같지?"하며 진통 측정기를 달아 보시고는 분만실로 이동하자고 하셨습니다. 두둥!
드디어 아침, 그러나 원장님은 출근하시기 전 시간.
(아침 7시 즈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는 그렇게 서너시간의 진통을 아기와 저, 둘이서 이겨냈습니다! 남편도 함께한 것으로 해 두죠.)
'아가야, 조금만 참아. 지금 나오지 말고 조금만 더 있다가 나와.'
아무리 책임 분만제라 제가 언제 아기와 만나건 담당 원장님께서 와주신다고는 하지만, 굳이 가셨다 다시 오시게 혹은 주무시다 말고 뛰어 오시게 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초산이기에 시간이 좀 걸려, 오후에 아기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하셨지만 그 날 조원장님은 오전에만 진료가 있고, 오후 없음, 그리고 당직이셔서, 나오려면 오전 아니면 차라리 당직이실 때 나오라고 아기에게 압력을 가했드랬죠 ^^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는 걸 확인한 후, 무통주사를 위해 당직 선생님이셨던 2과 원장님께서 수고해 주셨고, 말로만 듣던 무통은 음.... 정말 무슨 이런 주사가 다 있나 싶을 정도로 신세계였습니다. 죽지는 않겠지만 죽을 것 같았던 통증이 사라지고 남편을 불러다 제 앞에 앉힌 후, 폭풍 지시를 시작했습니다. 물론 아무런 통증이 없어 남편과 폭풍 수다를 떨던 그 때도 저는 다리를 마름모로 (모양은 대충 그렇지만 실제로는 좀 더 벌어지도록, 발바닥을 마주한 양반다리 비슷한 자세로....) 만들고, 주기적으로 힘을 주어 가면서 무통의 축복을 수면으로 이어가지 않고, 오히려 통증이 없을 때 아기가 더 빨리 내려 올 수 있도록 휴우 휴우 노력했습니다.
영양제 비싼거 쓰잘데 없이 신청하지 마라, 사진관에는 아기 만나면 바로 연락해라, 부모님께는 내가 연락 할 테니 낳자마자 바로 전화하지 마라, 울지 마라 등등... 사실 좀 더 실감나게 써 보자면 이러합니다.
"영양제 비쓴거 쓰 .. 으읍 .. 데 없이 시인--------------- 읍 하 -------- 휴우."
(남편 왈) "알겠어, 영양제 제일 좋은 걸로 할게."
"아니, 하 읍------ 휴우. 지 말라고."
"휴지?"
뭐 이렇습니다.
다시 내진.
드디어 9시가 지나 원장님이 출근하신 시간.
아기가 거의 내려왔기에 원장님을 모셔 오겠다는 간호사 선생님.
그 사이 몇 분의 간호사 선생님께서 몇 번이나 제 속을 확인하십니다^^ 그 때는 그러거나 말거나 빨리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 뿐.
출근하자마자 제가 왔다는 소식에 들렀다며 찾아 오신 조원장님. 그런데 생각보다 빨리 아기를 만나게 될 것 같다며 준비 해야겠다는 기쁜 소식! 아래층에 내려 갔다가 금방 다시 오겠다는 원장님 옷깃을 잡고,
"금방 다시 오시는거죠?"
"응, 금방, 얼른 올게. 곧 만나겠다, 아기."하시며 뛰어가시는 원장님.
(저는 정기 검진을 위해 병원을 찾았을 때, 샌드위치를 손에 들고 병원을 뛰어 오르내리시던 조원장님을 여러 번 뵀습니다. 감동의 모습 +.+)
그리고 정신없이 준비되는 분만.
차분한 음악이 들려옵니다. 향도 피워집니다. (아마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저 촛불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비몽사몽이라 정확치는 않습니다.) 그 사이 무통빨이 떨어지고, 한 번 더 무통이 들어옵니다. 다시 평온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저의 힘주기는 계속됩니다. 하지만 제대로 힘이 들어가는지 무통 때문에 알 수가 없습니다. 간호사 선생님을 한 분 붙잡습니다.
"선생님, 저 어디를 힘 줘야 하는지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아까 잘 하시던데."
"그런데 지금은...."
"아이고, 무통을 괜히 하나 더 놨나보다...."
"좀 봐주세요."
그러고는, 민망하다는 생각 하나 없이, 선생님께 아기가 나올 곳을 봐 달라고 부탁드리고는, 머리로 찬찬히 그 길을 생각하며 힘을 줘 봅니다. 이 때 남편은 밖으로 내 보낸 상태였습니다. 민망시러운 모습은 최대한 보이지 않기로 마음 먹었던 터였거든요.
"저 여기로 힘 주는 거 맞나요?"
"아닌데..."
다른 곳을 생각하며 다시 힘을 줍니다.
"여기는 맞나요?"
"아니에요."
"그럼 여기는요?"
그렇게 몇 차례 다른 곳이라고 생각되는 지점을 찾아 힘 주기를 하던 끝에,
"거기에요, 그렇게 힘 주면 돼요 엄마!"
하는 곳을 기억하며 주기적으로 호흡과 힘 주기를 끊임없이 합니다.
그러던 중!
"엄마, 아기 머리 보여요! 원장님, 원장님 얼른!"
저는 아직도 무통으로 평안하기 그지 없는데 방에 계시던 대여섯 분의 간호사 선생님들은 말 그대로 비상이었습니다. 저는 계속 끄응 끄응 힘 주기.
원장님의 등장은 곧 아기를 만날 수 있음을 의미하기에 타는 목마름도 곧 해결되리란 기대로 신나는 출산 직전.
"제가 도와 줄게요. 자~ 힘 잘 주시네."
어느덧 남편도 제 곁에 와 탯줄을 자르기 위해 준비하고 서 있었습니다.
원장님의 응원과 도움의 손길, 얼마 지나지 않아 들려 오는 내 아기의 울음 소리, 그리고 내 가슴으로 그 아기를 올려 주시며,
"11시 22분. 3점 02. 공주님! 아기 건강해요~"하시면서
"이렇게 출산 잘 하면 둘째 나아도 되겠네!"하십니다.
'아이고~ 그런 말씀은 접어두셔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수없이 되뇌며, 나도 모르게 자꾸만 흐르는 눈물 때문에 다시 없을 이 소중한 만남, 난생 처음 보는 내 아기의 얼굴이 부옇고 흐릿해 속상해 눈물을 훔치며.... 끊임없이 반복되었던 출혈, 유산기 때문에 주사를 맞고 또 맞아 엉덩이가 딱딱해져 더 이상 맞을 곳이 없던 때, 그러다 주사약이 튀어 오르기까지 하는데도 주사 맞기를 계속 해야 했던 그 시절, 입덧으로 먹지도 못하고 신물까지 분수처럼 쏟아내던 때, 기형아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눈물로 기도했던 1주일, 그리고 괜찮다는 원장님 전화를 끊고 걸어가던 길거리에서 주저 앉아 엉엉 울어 지나던 분이 부축해 주었던 때, 삼시 세 끼 밥 먹고 내 손가락을 찌르며 당 검사를 하고... 또 내게 있었던 ... 출산의 고통 그것의 몇 배나 되는 시험관 시술의 과정 등. 짧은 순간, 내 아기를 품에 안은 그 때 이 과정 속에 지난 모든 것들이 스쳐 지나가며 그저 목청껏 울어대는 내 아기의 울음 소리가 꿈이 아니기를.....
(갓 태어난 내 아기, 이샤론)
감상에 흠뻑 젖어 들으려는 그 즈음. 아빠가 탯줄을 자르고 아기는 첫 목욕을 위해 저와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후처치가 시작되었죠. 많이, 깊이 꿰매야 해서 시간이 걸릴 거라는 원장님.
"물, 물 마시고 싶어요."
"30분만 참아요. 곧 마시게 해줄게."
'그래, 몇 시간도 참았는데 30분 못 참을까.' 생각하며,
"예쁘게 잘 꿰매 주세요"라고 농담도 던질만큼 제 출산은 잘 마무리 되었습니다.
(오후 진료가 없었고, 그 날 당직이셨던 조원장님.
당직을 위해 다시 출근하시자마자 제 병실에 직접 찾아오셔서 괜찮은지 살펴봐 주시고 사셨던 것.
정말 조원장님의 감동 포인트는 끝이 없는 듯 합니다 ^^)
후처치가 끝난 후, 분만실에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엄마...."
병원에 입원하고 채 12시간이 지나지 않았던 터라, 제 전화에 혹시라도 큰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거나 하는 위급 상황이 생긴 줄 알고 놀란 엄마.
"나 샤론이 만났어."
(아기 이름은 아기가 생기자마자 이미 지어 놓았었습니다.)
"뭐라고? 낳았다구? 언제?"
"좀 전에. (웃음)"
"너 괜찮아? 아기 괜찮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랜 시간의 진통 끝에 두 아이를 제왕절개로 만나고도 함께 퇴원하지 못할만큼 힘들게 출산하고 건강치 않게 아이들을 얻었던 엄마는 자연분만의 놀라움과 멀쩡한(?) 저와 아기 소식에 여러 번 놀라움과 감사를 표하시며
"아버지 감사합니다, 할렐루야!"를 외치셨죠. ^^
늘 차분하고, 단아하던 엄마가 그토록 흥분으로 감사를 외치는 건 40을 바라보는 제 인생에서 겪는 또 하나의 첫 경험이었습니다.
(태어난 날, 목욕 후, 아빠 품에 안긴 내 아기, 이샤론)
얼마 전 제 딸 샤론이는 100일을 맞았습니다. 그리고 요즘은 아직 목이 건들건들하기는 하지만 의자에 앉기도 하고, 엎드려서 목을 빳빳이 가누기도 하고, 첫 소아과 진료 때 "아기가 작습니다~"했던 것과는 달리 살도 토실토실 올랐습니다. 폭풍 옹알이에 외할머니와 마주 보고 까르르르 소리 내어 얼마나 웃어 대는지.
(100일 떡을 가지고 웃는 내 아기, 이 샤론)
(가장 친한 친구가 될 첫 째 반려견 맑음이와 내 아기, 이샤론)
제 아이는 딸이라, 몇 십 년 후면 제 딸도 제가 겪은 이 진통을 겪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라온에서 말 그대로 우리의 만남이 "라온"이 되었던 것처럼, 그 몇 십년 후에도 제 딸 샤론이가 더욱 발전된 라온산부인과에서 제 인생 최고의 의사선생님이셨던 조용훈 원장님과 혹은 그 훌륭한 원장님의 후배인 또 다른 훌륭한 선생님과 함께 세상 어디에도 없을 "진통의 라온"을 웃음과 감사로 감당하게 되기를 바라 봅니다.
조원장님!
늘 건강하셔야 합니다!
여자로 태어난 이상, 싫어도 즐겁게 가야 할 곳이 산부인과일텐데 원장님 덕분에 두려움, 걱정, 또 때로는 수치스럽던 마음까지 내려 놓고 담담히 그리고 편안히 병원에 가게 됩니다.
감사하다는 말 밖에 드리지 못해 죄송하지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임신과 출산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저희 부부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아기를 기도하며 준비할 수 있도록 조언해 주셨던 것, 건강히 그리고 무사히 아기를 만나고 또 출산 이후 지금까지도 저를 돌봐주시는 것. 감사하다는 말 그 이상으로 감사드립니다.
"라온"은 저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산모들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경험하게 해주는 축복의 곳임을 다시 한 번 힘주어 전하며 이 글을 마무리 합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봐 주신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사족>
돈, 권력, 지식, 성, 인종.
이 다섯 가지 앞에서 공정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지은 태명 '오공'이.
그리고 사랑과 은혜 가득한 사람으로,
받은 사랑과 은혜 베풀며 살아가기를 바라며 지은 이름 '샤론'이.
저는 '오공이'이자 '샤론이'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바로 이 곳, "라온"산부인과에서요.
(아빠와 같은 방향, 같은 턱선을 가진 내 아기, 이샤론)
(첫 가족 사진. 내 아기, 이샤론 생후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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